묻지마 '거여견제론'
묻지마 '거여견제론'
  • 김석수
  • 승인 200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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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거여견제론’


박근혜 대표는 보기 드물게 정치력 있는 여성정치인이다. 물론 여기서 정치력 있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권력자의 집안에서 권력논리를 나름대로 충실히 배워 몸에 익힌 체질이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한나라 당이 박근혜 대표를 앞세운 이후 몰라보게 지지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분명 여기에는 박정희와 육영수 향수에 대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뛰어난 처세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용력과 진퇴의 시기를 아는 등 여러 가지 그럴만한 요인을 갖추고 있는 정치인임이 분명하며, 그래서 그녀의 상대 당 사람들은 그녀를 상대하기가 매우 벅찰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전의 한나라당 지도부가 한결같이 수구꼴통소리를 자초할 수밖에 없는 낡은 냉전논리의 소유자들임에 반해 냉전시기 가장 큰 수혜자였던 박대표는 어느새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신안보논리를 선거판에서 휘두르는 여유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보수, 혹은 일부 보수적인 젊은 층의 구미에 맞는 보수상품이 바로 박근혜라는 상표가 아닌가 싶다.

그런 박대표가 지지도를 올리는 방법으로 요즘 거여견제론을 떠들고 있고, 이게 제법 잘 먹히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이 논리를 듣는 필부들이야 민주주의란 견제와 균형이라고 배웠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고, 이 당연한 논리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승천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거여견제론이 당연한 논리여서 사람들이 한나라 당을 더 지지하고 부동층이 늘어난 것일까? 한마디로 국민들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거여견제론이 당연한 논리라면 선거는 왜 하는 것인가? 4년 내내 분탕질치다가도 정부.여당을 견제해야겠으니 야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해서 정말 국민들이 힘을 실어준다면, 그렇게 해서 국회의석이 균형의석을 이루든지, 아니면 국민들이 너무 오버해서 다시 거야체제가 된다면 정말로 국회는 생산적인 국회가 되고 정부.여당의 실정을 보완해주는 야당이 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표가 다시 태어나겠으니 다시 한번만 도와달라고 하는 읍소에, 마음약한 국민들이 ‘그래 딱 한번만 도와주자’라는 판단에는 지난 4년간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국정을 얼마나 책임있게 운영해왔는지를 묻는 선거행위의 핵심적 요소가 고스란히 빠져있지는 않는 것인가?

눈물짜는 감성의 정치에 이어 거여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한번 매맞고 4년을 편히 지내자라는 야당의 위선이 또아리틀고 있지나 않는지, 국민들은 어떻게 검증할수 있을 것인가?
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거여 견제론이 진실이라면 야당이 17대국회 임기내내 나라가 망하든 말든 분탕질치다가, 또 선거직전에 어디선가 산천어인지 열목어인지도 모를 미인들 데려다가 읍소하는, 좀 치사한 미인계를 쓴다면 그 때가서 다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야당에게 심어줄 수 있지는 않을 것인가?

선거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여야 한다. 선거가 정치 기득권자들의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만으로 전락한다면 그 선거를 치루는 공화국 시민들은 선거일 하루만 주인이고 나머지 4년은 머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4년, 거대야당인 한나라 당이 잘했으면 찍어주면 된다. 민주당이 잘했고 앞으로 잘할 것 같은 근거가 있으면 민주당을 찍어주면 된다. 이제 막 생긴 열린 우리당이 잘할 것 같으면 우리당을 찍으면 된다.

여기에 거여견제론을 들먹이는 것은 정당한 사유와 근거에 의해 여권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대중의 일부 몽매성(기억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대중의 한계)에 기초해 선거도박을 하자는 논리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견제와 균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견제와 균형도 할만한 세력이 해야 한다. 한번도 원내진출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이 견제하겠다면 말이 된다. 그들은 아직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평가를 받아왔고, 그래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정당이,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대통령탄핵을 감행했고, 그래서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되어 하루아침에 쪼그라진 당세를 만회하기 위해, 근거도 없이 거대여당이 거대야당이 했던 것처럼 독선적으로 국회를 운영할 것이란 가정위에 거여견제론을 강조하고 표를 긁어모으는 것은 정당한 상행위가 아니다.

좋은 상품을 내놓고 돈벌 궁리를 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켜 사람들 등이나 치는 야바위꾼 같은 짓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정당하지 못한 이치와 같다.

박근혜 대표는 라디오인터뷰도중 진행자와 싸움하느라 마무리대답을 하지 못한 손석희씨의 질문에 이제라도 대답하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경제가 어떻게 좋아지고, 나라살림이 어떻게 좋아지는지를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예요”라는 동문서답으로 회피하지 말고 정직하게 대답하여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 대표는 거여견제론을 주장할 합리적 근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합리적 근거에 의해 다수당이 된다면 국민은 진정으로 행복해 질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왜 자신들이 거대해질지도 모를 여당의 견제세력으로 적임자인지를 입증해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대표의 거여견제론은 선거를 치루는 ‘잔꾀’수준의 기만적 슬로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국민은 또다시 불행한 국회를 4년동안 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이 스스로 주장해왔듯이 선거라는 국민적 심판대위에서 진정으로 책임있는 정치인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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