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아름다움
석양의 아름다움
  • 김포데일리
  • 승인 200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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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일(落日)은 서산에 져서 동해로 다시 나고 추풍에 이운 풀은 봄이면 푸르거늘 어떻다 최귀(最貴)한 인생은 귀불귀(歸不歸)를 하느니…….

창 밖을 바라보며 지나는 이들의 표정을 무심코 바라보니 한사람도 같은 표정이 없었다. 저마다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바쁜 걸음은, 아직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음이리라.

누군들 삶의 고독과 고뇌가 없으리. 자신만이 지고 가야 하는 질곡의 삶에 팔자소관 운운하며 살아들 가겠지!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서산에 해가 기우는지 붉은 노을은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일출의 장관을 보면서 눈이 부셔함과 다르게 지는 해의 석양은 우리의 부질없는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고 지는 것에 그 누가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백년의 세월도 채울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 천년을 살 것처럼 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신은 뭐라 판단하고 계실까?

추석 명절이 다가옴에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내려오는 길은 여러 모양의 갈등을 일시에 제거시켜 주었다. 고대광실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인지 ……. 그저 한줌 흙으로 돌아갈 뿐인 것을…….

왔다 가는 것 또한 자연의 법칙, 순리임에 분명한데 너무 빨리 곁을 떠난 부모님의 아쉬움이 차라리 형제 우애를 남길 수 있었을까? 산등성이의 수많은 묘비가 시부모님의 이웃이 되었을까?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까닭은 미안함이 남아서일까?

조상의 묘를 벌초하는 이들의 바쁜 손놀림이 어떤 마음가짐인지는 가히 알 수 있었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 정성을 다할 수 없음에 부질없는 손질인 것을 가슴 저며 함은 어디서 오는 마음인지! 이 가을날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풍족하지 만은 않았을 우리네 추석 상이 얼 만큼 행복했기에 일년 삼백육십오일이 한가위만 같기를 희망했을까? 나눔에서 오는 우리네 인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풍족함과 행복함은 분명 같은 상선에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석양의 하늘은 우리 엄마를  연상 시켰다. 80평생의 세월이 이제 기름을 아무리 쳐도 삐걱거리는 다 써 버린 기계 부속과 다를 바 없으련만, 구부러진 허리로 아이고 소리를 절로 하는 그 몸으로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음은, 자식들이  왔을 때 빈손으로 보내고 싶지 않음에서 라니  할 말을 잃게 했다. 그것이 부모 마음이리라. 그것이 석양의 따뜻함이리라.

일출의 장관이 삶을 시작하게 했다면 석양의 하늘은 조용히 정리하게 하기에 가족을 만나 안부를 물으며 평안함을 누리기를 기대해 본다.
추석 명절의 풍요가 우리 모두에게 넉넉함을 선사해 주었으면 좋겠다./노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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