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시청률과 불륜 경쟁’
방송이야기-‘시청률과 불륜 경쟁’
  • 김포데일리
  • 승인 2005.10.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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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드라마의 천국’… 치열한 드라마 경쟁이 불륜 경쟁이 돼선 곤란..
방송사간 선의의 경쟁 필요하지만 시청률 의식한 불륜 경쟁 자제해야 ...

“요즈음 드라마는 ‘불륜의 실험 무대이고, ‘불륜의 경연대회’다.”

한 방송사에서 본부장까지 역임했던 원로 선배의 말이다. 웬만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서 자신이 몸담았던 방송을 편들 일일 터인데, 이쯤 되면 지금의 방송사 위상과 시각을 짐작할 수가 있겠다.

또 한마디 더 인용하자면 “방송이 착하고 좋은 사람을 만들기보다 지저분한 사람을 만들려하고 있고 안 해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재는 게 편일 텐데도 불구하고 대단한 혹평이다.

사람들은 어느 매체보다 방송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열광하지만 어느 사안이 터지고 나면 하루아침에 가혹하리만치 비난 세례를 퍼붓는다. 기대가 큰 만큼 비난에 대한 강도가 큰 탓이다.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방송의 꽃’이라고 말할까. 그런 가운데 TV는 ‘드라마의 천국’이라고 해서 드라마 하나가 히트를 치면 그 연속성에 따라 인접 프로그램이 덕을 본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른바 관성의 법칙이다. 인접 효과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시청률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24일부터 방송된 2TV 수목 드라마 <장미빛 인생>이 47%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목하 고공 행진(?) 중이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 마지막 시청률인 50.5%에 육박하고 있는데 반해, 상대사인 MBC <가을 소나기>는 시청률 3.1%라는 저공 비행으로 드라마가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이 갈 정도의 저조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3.1%라는 수치는 방송 종료 후 애국가가 나올 때 시청률이기 때문에 해당사의 입장을 생각하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시청률이 낮으면 책임론과 비난이 덩달아 따라오게 된다. 한 네티즌은 “주인공 또라이 만들어 놓고 시청률 바라나. SBS, KBS 2 드라마 다 재밋는데 배우들 불쌍해 죽겠네”라는 글을 남겨 놓았다.

문제는 치열한 드라마 경쟁이 불륜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장미빛 인생> 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드라마 시청률 좋다고 작가님 막 나가시는군요. 아무리 시청률 의식하여 만든다지만 방송이 사회와 사람에게 미치는 역기능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95년 방송된 SBS <모래시계>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폭력 드라마의 효시라는 말을 듣고 있다. 96년도 MBC의 드라마 <애인>은 아름다운 불륜 논쟁을 일으키며 불륜 드라마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기혼 남녀의 사랑이 드물지 않은 현실에서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을 공론화시키고 수면위로 끌어올렸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01년 KBS 2TV 주말극 <푸른 안개>는 40대와 20대의 사랑을 그려 논란을 빚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아달라는 연출자의 바람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불륜을 꿈꾸는 남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합리화시켰다는 비난이다.

2004년에는 KBS 드라마 <열여덟, 스물 아홉>이 기획단계부터 시민단체 ‘활빈당’으로부터 유부녀, 고교생과의 삼각관계라며 강력한 성토를 받았다. 드라마가 간통을 조장하고 청소년에게 성문란을 조장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방송이 되면서 코믹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라는 평판 속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해 MBC 드라마 <앞집 여자>도 강북 중산층 아파트의 평범한 30대 부부 세쌍 외도를 다루어 불륜 반열에 올랐다.

한 방송학자는 정의로 둔갑한 폭력, 사랑으로 포장된 불륜, 미학으로 처리된 섹스로 TV 드라마가 하수도 문화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방송사가 시청률만을 의식해서 젊은 남녀를 삼각관계로 몰아가고, 여성 시청자의 정서를 따라 여성 취향의 작품만 일관하는 것 또한 불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불륜이라고 해서 시청률이 꼭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을 소나기>는 혼수상태인 아내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며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2004년 이후 지상파 방송 3사 드라마 중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불륜 불패’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은 불륜을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는 드라마의 단골 메뉴다. 또 하나는 시한부 인생 이야기도 드라마의 흥행공식이 되고 있다. 성공한 드라마 중 하나인 <가을 동화>가 그러하고, 암을 선고 받은 맹순이(최진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장미빛 인생>이 그렇다.

지금 미국의 ABC는 프라임대에 <최고 사령관>이라는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는데 2008년에 첫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여는 드라마라는 성급한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드라마 소재와 비교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방송사간 시청자를 위한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흥행공식과 시청률만 의식해 불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심각하다. 더구나 TV에 나오면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불륜 경쟁’만 할 것인가. /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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