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전설의 고향’
방송이야기-‘전설의 고향’
  • 김포데일리
  • 승인 2005.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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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시보고 싶은 드라마 3위에 꼽혀'
'충효사상·권선징악 등 교훈 때문'

엊그제 논산 관촉사를 다녀왔다. 그 유명한 은진 미륵이 모셔져 있는 사찰이다. 그러나 이곳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은진 미륵은 알았어도 어느 사찰에 있는가는 잘 몰랐다.

우리나라는 가는 곳마다 좋은 위치에 절들이 자리 잡고 있고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전설이 없는 곳이 없다. 이 절 어귀에도 어김없이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즉 반야산으로 고사리를 캐러 갔던 한 여인이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았더니 큰 바위가 솟아오르고 있어 이를 관가에 알렸고, 이 말을 전해들은 고려 광종이 필시 부처님을 조성하라는 징조라 해서 혜명대사를 시켜 미륵보살 입상을 조상(彫像)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절을 둘러싸고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이지만 특히 무더운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이 우선 KBS TV에서 방송한 <전설의 고향>이 아닌가 싶다. 최근 어느 조사에 의하면 다시보고 싶은 드라마로 <전설의 고향>이 3위 안에 들어가 있고, 납량특집에서 기억에 남는 드라마로 <전설의 고향>이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됐지만 <전설의 고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슴 속에 많은 향수를 심어주고 있다.

<전설의 고향>은 77년10월13일 ‘마니산 효녀’를 첫 방송된 후 88서울 올림픽 때 잠시 중단됐다가 다시 93년까지 계속됐다. TV드라마로서는 가장 장수 프로그램이고 시청률도 20%대를 유지했다. 시청자 반응도 좋았다. 96년 이후 3년 동안 7월~8월에 여름 특집으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구미호와 처녀귀신, 도깨비, 이무기(뱀), 공동묘지 등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 때문에 화장실 가기가 두려웠고 밤잠을 설쳤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귀신이나 구미호 등을 통해 충효사상은 물론 권선징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설의 고향>을 연출한 PD 역시 한 두 명이 아니다. KBS 드라마국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연출자는 <전설의 고향>을 거의 거쳤다.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야인시대>를 연출한바 있는 장형일, 드라마국장을 지냈던 최상식, 의 이유황, 김홍종, 홍성룡, 류시형, 작고한 임웅빈 PD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 대하드라마 CP였던 안영동 PD도 100여 편을 연출했다.

공교롭게도 최다 연출을 맡은 PD 몇 사람은 공교롭게도 큰 수술을 받았거나 수술 후 후유증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어 혹자는 어떤 말 못할 징크스와 결부시키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전설의 고향> 제작 현장을 가본 적이 있었다. 여름 납량특집으로 부활되던 직후다. 촬영 장소는 괴산 방향에 있는 속리산으로 ‘지네 바위’라는 제목이었다.

비를 맞으며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진해 씨와 고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솔직히 말해 현장에서 본 <전설의 고향>은 상상했던 것보다 어렵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빗속에서 밤샘 촬영인데도 누구 한사람 불평 한 마디 없이 진지한 상황 속에서 강행군을 하는 모습은 큰 감명을 심어주었다. 추위 속에 밤샘 촬영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유치하고 흔한 이야기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점이었다.

<전설의 고향>이 안방극장에서 사라진 것은 98년 이후다. 사라진 이유는 아무래도 소재의 고갈이라는 게 정설이다.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당시 성우 유기현의 걸쭉한 해설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도 적지 않다. 한밤중에 라디오로 전설을 듣고 소변보러가기가 겁나 잠을 못 잤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소재가 고갈되면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이유는 시청자의 눈이 높아지고 있는데 특수영상기술이 뒷받침을 하지 못했다. 즉 귀신 분장, 처녀 분장, 구미호 분장 등이 유치하게 보이고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최근 구미호로 어울리는 배우를 조사한 결과 한예술, 고소영, 하지원, 한채영, 송윤아 순으로 나왔다. 아마 지금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이들의 연기가 볼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토종 드라마로 전성기였던 시절 한혜숙 등 웬만한 여자 인기 탤런트들은 <전설의 고향>에 출연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공포물은 서양의 드라큘라나 늑대와는 달리 처녀(여자) 귀신만 있기 때문이다. <용의 눈물> <야인시대>의 이환경 작가도 한때 이 드라마 극본을 썼다. 그 만큼 <전설의 고향>은 우리나라 TV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생방송 도중 알몸을 노출했다 해서 신문이고 방송이고 야단법석이다. 또다시 고질적인 상대사 헐뜯기도 재현되고 있다. 철없는 아이들의 엽기적인 일이지만 애들 일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 세상이 시끄럽다. 이럴 때 납량 여름 특집으로 <전설의 고향>이 방송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TV를 시청하며 더위도 잊고 보다 착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위성방송과 케이블TV에서 ‘구미호’ ‘묘곡성’ ‘여우골’ 등 그동안 방송된 것들을 골라 방송한다고 하니 올 여름은 그나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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