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PD의 자살 기도와 압박감’
방송이야기-‘PD의 자살 기도와 압박감’
  • 김포데일리
  • 승인 2005.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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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끊기 보다, 목숨을 바쳐 책임을 다하는 자세와 의지가 필요하다'

최근 X파일이라는 것이 불거지면서 국정원이 수난을 맞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보면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중정부장이나 간부를 지낸 사람들은 대개 요직에 앉기 마련이고 막강한 힘을 여전히 발휘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미국으로 도피한 사람도, 대통령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도 있었지만 소위 ‘중정’(중앙정보부)이라면 서슬이 퍼랬던 기억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도청파문으로 이미지가 심하게 구겨지고 급기야는 전직 국정원장이 두 명씩이나 구속됐다. 어디 그뿐인가. 차장 한사람은 자살까지 했다. 불과 십 수년 전만해도 정권을 쥐락펴락했었는데 시대가 바뀌고 보니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권력과 세월의 무상함을 보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한 HD영화 연출을 준비하던 방송사 PD 한 사람이 목을 매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 이유로는 HD영화 연출을 준비하던 중에 이에 따른 압박감과 고민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 의식 불명상태라지만 전도가 양양한 PD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며칠 전 귀동냥으로 들은 것은 뇌 기관 손상으로 인해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과 가족과 KBS측이 책임 소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건 직후 KBS 정연주 사장도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중인 PD를 위문하고 갔다지만, 자살 소식을 듣자마자 소위 방송사의 꽃이라는 드라마 PD도 좋은 시절이 다 갔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꽤 오래 전 PD 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 그러나 자살한 이유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크게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드라마 PD가 스타보다 몸값이 비싸고 각광을 받는 일도 많다.

<가을 동화>, <겨울 연가>의 윤석호 PD의 주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단하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 PD도 그랬었다. 최근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고 하지만, 몇 년 전 미니시리즈 <북경 내 사랑> 현지 촬영 때 동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단순한 연출자가 아닌 ‘스타’ 보다도 더 유명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연기자를 스타를 만들었던 것은 스타 자신의 재능도 있겠지만 다분히 연출자의 몫이었다. 지난 시절 유명한 영화배우 탄생의 이면에는 역량있는 감독이 있었다.

60년대 홍성기 감독과 김지미,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등의 영화계 이야기들은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설명 안 해도 아는 이야기들이다. 인기 가수 역시 대부분 작곡가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러면 지금 현재 드라마 PD의 위상은 어떠한가. 물론 그 위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닐 테지만, 외주 제작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방송사 PD의 설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위 탤런트라는 스타급 연기자도 대부분 기획사 소속이기 때문에 옛날처럼 무소불위의 캐스팅 행사도 뜻대로 안된다. PD로서 역부족인 상황이 많아진 것이다. PD 보다 소속사가 더 힘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스타급에게 지불해야 하는 출연료 또한 큰 부담이다.

이번에 자살을 시도한 PD 역시 이런저런 제작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이 아니었을까 예측이 된다. 얼마 전 어느 PD는 드라마 시청률이 부진하자 자신이 맡았던 연출을 팽개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도로 정신적인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한 PD가 고민을 하다가 급기야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일어나자 한 방송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뉴스 프로그램을 온통 동원해서 보도했다. 경쟁사간 해묵은 감정싸움이 도진 것일까?. 직전에 터진 알몸사건 보도로 감정이 상해진 결과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상대의 불행을 감안하는 동업자의 자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졌다. 정몽헌 회장, 안상영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 유태흥 전 대법원장 등등 지도급 인사들만 살펴봐도 적지 않은 숫자다.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 양도 얼마 전 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방문하고 돌아온 강삼재 전 부총재도 네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다고 하니까 심리적 공황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로서는 자살에 대한 충동을 많이 느끼는 모양이다.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통계도 있고 우리나라 평균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소식도 들린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하루 32명이 자살을 하고 여자 보다 남자 자살률이 2.2배가 높다는 수치가 나왔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적은 것은 사회적 활동 범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자살의 동인이 적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가까운 역사 속의 인물 중 민영환, 이준 등 나라를 위해 자살한 인물들의 충절을 배우긴 했지만, 최근 들어 그렇지 않은 자살이 왜 그리 많은가 싶다. 한 젊고 유망한 PD의 자살기도를 보고 지금의 방송 상황과 오죽하면 목숨까지 버리려고 했을까 하는 연민의 마음이 앞선다. 그렇지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끊기보다 목숨 바쳐 책임을 다하는 자세와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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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부산일보 서울지사 취재기자, KBS 정년 퇴직. 지금은 KBS 사우회 출판홍보위원과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간불교에 ‘선재동자 남도 삼천리’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도 이제는 스타’, ‘아버지가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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