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또다른 삶
나의 또다른 삶
  • 이상철
  • 승인 2004.09.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중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투잡스'라고도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낮에는 인형극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오후부터는 인터넷신문 시민기자로 기사를 송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경제적인 궁핍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내 프로필에 기재한 바와 캍이 시사에 취미와 관심이 부업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것 하지만 나에게는 가슴아픈 과거가 있다.

어렸을때부터 독실한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란덕에 사역자를 망하고 그뜻을 이루기 위해 친구도 사귀지 않아가며 학업에만 열중해 왔다.

그렇게 나는 총신대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였으나 3학년때 가정형편으로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필자의 가문은 처음부터 어려운환경이 아니었다.

3대조께서는 좌의정,5대조께서는 우의정을 지내셨고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하버드대 국비장학생출신으로 대학병원장이셨고 의료선교사로도 활동하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60년대 최고인기 패션모델이었으나 친구분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 후 홍익대 교수로임용되어 모교에서 생활하셨지만 내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 두셨다.

퇴직금으로 근처의 레스토랑을 개업하셨고 한 때 월 매출 3천만원대까지 치솟았으나 필자가 고교재학중이던 87년 적자로 문을 닫았다.

동생은 연세대학원 생명공학도 출신으로 현재는 D그룹 사원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으로 친할아버지가 약국을 경영하셨다.

신학대를 중퇴하고 일식 제조공장, 장갑공장, 가구공장, 경양식집, 막노동, 노래방 도우미, 방송 액스트라, 은행 경비원, 피자배달, 신문배달, 지하철판매 가요제, 탤런트 응시, 개그맨 응시, 모델 응시, 문서작성, 쇼핑몰제작, 웹 마스터 장애인 복지사, 오마이뉴스 기자, 광고지 배포, 캐리커쳐, 잡지만평 등 여러일을 전전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인터넷신문 뉴스타운(필자가 선교문화신문과 더블어 기사송고를 병행하고있는 사이트)

2년전에는 아마추어소설 '체인지 근대사''요지경2002'를 집필하기도 했다.

인생의 반 가까이살면서 사역자의뜻을 어느정도는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인형극을통해 선교사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꿈을 이룬 듯 보람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황여파로인해 인형극공연 부재로 사실상 인터넷신문기자로

일방통행을 하고있는 상황이다.



공백기간이 있기마련이라고는 하지만 필자가 활동하고있는 극단은 현재 업종을

교체하여 명맥을 유지하고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기에 고난을주신 것...'이라는 어머니의말씀이 마음속에 간직된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