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도 되는 나라 대한민국
깎아도 되는 나라 대한민국
  • 이상철
  • 승인 2004.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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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격 회복 절실, 유통왜곡 바로 잡아야
10만 원 짜리 제화 상품권을 선물하게 되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이 상품권의 진짜 가격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주는 사람은 5만 원 짜리를 "10만 원 짜리입니다"하면서 줄 것이고 받는 사람은 상품권에 쓰여진 가격 보다는 할인가격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10만 원 짜리 상품권이 할인돼 7∼5만원에 유통되고, 이는 다시 할인행사에서 깎아준다면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원가는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신제품이라고 출시된 의류제품이 백화점과 아울렛 매장에서 각기 다른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도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정상 제품이 출하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펼치는 것을 보고 소비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정상 가격 상실은 불신의 사회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이런 불신들이 만연돼 있다. 제품에 붙어 있는 권장소비자 가격은 '거짓말 가격'이라고 붙여야 할 판이다.

한국시장에서 의류제품을 정상 가격에 구매했다면 '바보' 취급을 받을 만큼 할인 행사는 만연돼 있다. 널려 있는 게 아울렛 매장이고 연일 잇따라 할인행사가 펼쳐지는 나라에서 정상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소비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통의 왜곡은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신용사회를 멍들게 한다. '시장 경제가 어디 원리원칙대로 가는 게 있느냐'며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불신의 가격체계는 결국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제품을 양산하지 못할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붕괴된 가격 질서는 한국 사회를 불신과 속임수의 나라로 만들게 한다. 투명하지 못한 기업과 검은 돈의 실체도 바로 이런 왜곡된 유통문화 속에서 잉태된 것은 아닐까.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향해 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이 같은 할인 천국의 오명을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

내수시장의 왜곡된 유통문화는 수출상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할인과 거짓 가격 체계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수출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기업들 간의 출혈경쟁은 한국산 제품의 가격을 추락시켜 제 값을 다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외국 바이어들은 한국 기업들을 놓고 줄타기를 하면서 가격을 내리려 한다. '한국산은 깎지 않으면 제 값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바이어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국내 유통시장의 왜곡된 가격체계는 한국 상품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우리 제품을 스스로 평가 절하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한국의 패션 유통시장이 가격체계에서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 할 때 세계 최고 제품과 브랜드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모순 된 부조리와 부패도 사라지고 정직한 사람들이 우대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돼 온 유통의 왜곡은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됐다. 할인을 하지 않는 대형 마트들이 백화점의 매출을 앞선 것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결국 할인 행사 없이 정상 가격을 붙여 판매하는 대형 마트를 더욱 선호하는 추세로 가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왜곡된 패션유통시장의 가격 체계를 바로 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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