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 김포시 경제국장 조성춘

동산의 밤은 알밤이 벌어 떨어지고 울타리 넘어까지 가지를 뻗은 감나무에 연시가 매달린 줄도 모르게 그렇게 가을은 바삐 지나기 일쑤

2026-09-16     김포데일리

어제 안양에 갔다가 늦게 돌아와 보니 개곡리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첫 벼베기를 해서 햅쌀을 찧었다고 쌀을 한 포 두고 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 운동 차 들판을 걸을 때마다 벼를 벤 논배미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을 보고 어느새 햅쌀을 먹을 때가 되었나 생각했는데, 고마운 친구 덕분에 햅쌀밥을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요새는 벼를 베는 게 일도 아니지요. 아침 이슬이 마르기를 기다려 콤바인을 몰고 들어가면 한 번에 여섯 줄씩 거침없이 벼포기가 베어져 체인을 따라 올라오면서 낱알들은 털려서 가마니에 들어가고, 볏짚은 따로 분쇄되어 땅바닥에 뿌려지거나 나중에 건초더미로 묶기 위해 가지런히 모아집니다.

콤바인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잠깐 동안 바인더가 있어서 파란색 끈으로 작게 볏뭇이 묶여 논바닥에 놓여지면 그걸 모아서 탈곡기로 타작을 했습니다.

바인더만 해도 따로 볏손을 치거나 배려 쌓을 일이 없어 일손을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널리 보급되기 전에 콤바인이 들어왔으니 실상 콤바인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대부분 낫으로 추수를 했습니다.

강화에서 주워 온 숫돌에 날이 새파랗게 서도록 잘 갈아 낸 낫으로 서걱서걱 벼를 베어 논바닥에 깔아 두었다가, 얼마간 마르면 볏손을 쳐서 뒤집어 주고, 앞뒤로 다 마르면 묵은 볏짚으로 묶어서 논두렁 따라 길게 배려 놓았다가 지게로 져 날라서 신작로로 끌어 낸 다음, 우마차나 길마에 실어 집 마당으로 들이든가 아니면 잘 마른 논틀에 모아 쌓았습니다.

동네 벼베기가 마무리될 즈음부터는 타작이 시작됩니다. 사실, 콤바인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타작을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절구통에 때리거나 뾰족한 틈새에 넣고 훑어서 털었다고 하는데, 제가 어릴 때 처음 본 타작기계는 사람이 발로 밟아서 돌리는 발틀이었습니다.

낫가리에서 볏뭇을 헐어 내려서 발틀 옆에 있는 사람이  일일이 볏뭇을 풀어 손에 쥐기 쉽게 한 줌씩 떼어 주면, 발로 발틀을 돌리는 사람이 볏짚에 달린 벼알을 털어내고 옆 사람에게 전해 줍니다. 거의 다 털린 볏짚을 넘겨받은 사람이 꼼꼼하게 마저 털어 낸 후 옆으로 넘기면, 다 털린 볏짚을 다시 묶어 마당 한쪽 또는 텃밭 구석에 짚가리를 쌓지요.

타작하는 틈틈이 갈퀴로 발틀 앞에 쌓이는 북대기를 긁어모으는데, 북대기는 벼알이 제대로 털리지 않은 채 손에서 빠져나온 볏짚입니다. 큰 덩어리로 묶어 두었다가 한가한 틈을 타서 일일이 손으로 벼이삭에서 낱알을 훑어내고 검불은 불쏘시개로 쓰지요.  북대기를 걷어내고 낱알이 어느 정도 쌓이면 삼태기로 퍼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노적가리는 매년 같은 장소에 만드는데, 바닥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꿰매지 않은 가마니를 다시 깐 다음,  밀짚으로 엮은 거적을 빙 둘러치면서 벼가 쌓여 올라 올 때마다 때마다 새끼줄을 둘러 한쪽으로 배가 나오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면서 쌓아 올립니다. 노적가리에 벼가 다 차면 가마니로 마무리를 하고 볏짚과 이엉을 올려 비나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지붕처럼 비스듬히 만드는데 맨 꼭대기에는 커다란 볏뭇으로 고깔을 만들어 씌웁니다.

노적가리를 쌓고 남은 벼는 가마니에 담습니다.  이 중에서 방앗간으로 보내 찧어 팔거나 양식으로 쓸 것들은 묵은 가마니에 대충 어림으로 담아 한쪽에 쌓아 두고, 공판에 낼 벼는 저울로 달아 60kg씩을 한 가마니로 만들어 묶은 후 집안으로 들여 건사를 합니다.   타작이 다 끝나고 나면 마당께에 이리저리 흩어진 벼알을 댑싸리 빗자루로 알뜰하게 쓸어 모아 바람개비로 날리고 키로 까불러서 잔돌과 뉘를 골라 낸 후 따로 잘래기에 담았다가 절구에 따로 빻아서 떡쌀로 쓰거나 설 명절에 뻥튀기로 튀긴 후 엿에 붙여 강정으로 만들었습니다.

발틀로 하는 타작은 손도 많이 필요하고 일도 더뎌서 농사가 웬만큼 많은 집은 타작만 해도 며칠씩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력 탈곡기가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동력을 삼륜차에서 얻어서 바퀴에 피대를 감아 탈곡기를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경운기 엔진이 피대를 씌울 수 있는 장치를 달고 탈곡기를 돌렸지요.

작은 볏뭇을 들고 탈곡기에 넣어 이리저리 돌리면 호다닥하는 낱알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먼지 냄새가 진동하지만, 탈곡기 밑으로 쏟아져 나오는 벼알들만 보아도 배가 불러왔지요.

식전부터 마당에 백열등을 켜고 탈곡을 하다가 빙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새참과 점심, 곁두리와 저녁까지 먹고 나면 일 시작하기 전에 받은 수건 한 장과 담배 한 갑이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동산의 밤은 알밤이 벌어 떨어지고 울타리 넘어까지 가지를 뻗은 감나무에 연시가 매달린 줄도 모르게 그렇게 가을은 바삐 지나기 일쑤였습니다.
들깨도 털고 수수자루도 꺾어 말리고 늙은 호박도 따서 고지로 켜서 말려야 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