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 김포시 경제국장 조성춘
이들 중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동양 사상계에서 뻐근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孔子)도 제자백가의 한 사람입니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법과 종법질서가 무너지고 제후와 신하가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벗어나 사적인 욕망에 끌려 도덕성을 잃고 권력을 탐하면서 사회가 어지러워졌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사회를 바로 세우려면 먼저 개인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인(仁)을 체질화해야 하는데, 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온 정성을 기울이는 충(忠)과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과 배려의 서(恕), 그리고 인의 마음을 행동과 규범으로 드러내는 예(禮)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인(仁)이 마음속의 높은 도덕률이라면 예(禮)는 이러한 마음이 행동과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규범이기 때문에 인과 예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나여야 합니다.
인(仁)의 시작은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며 예(禮)의 시작은 묻는 일(問)입니다. 상대방에게 묻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아래에 놓고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관계하고자 하는 마음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공자는 노(魯)나라의 벼슬을 지내며 대국이었던 주나라의 예법에도 밝은 인물이었습니다. 공자가 노나라의 주공을 모신 태묘(太廟)에 들어가 제를 올릴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국의 예에 밝은 공자의 태묘봉행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자는 제를 시작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아는 바대로 행하지 않고,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일일이 묻고 답변을 들은 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의 고름은 어떻게 매듭을 짓고 홀(笏)은 어떻게 쥐는지, 걸음은 어떤 발부터 떼고 보폭은 어찌하며 절을 할 때 허리는 얼마나 숙이는지, 술잔은 어떻게 채우고 얼마나 높이 드는지 등 그야말로 웬만한 어린아이도 알 만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답답할 정도로 물어가면서 제를 올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실망과 함께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공자는 예(禮)에 관한 한 세상 최고라더니 왜 일일이 묻는가? 누가 추(鄹)나라 사람의 자식(공자)이 예(禮)를 안다고 했는가?"라면서 격하게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 걸작입니다. "상대방에게 묻는 것, 이것이 바로 예이다(是禮也)." 얼마나 명쾌하고 깔끔한 정리입니까. 묻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존중한다는 의미니까요.
요즘 세상을 보면 묻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뽐내고 포장하는 기름지고 비싼 말들은 흘러넘치는데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함도, 배려하는 참을성도,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의 말은 씨가 말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비는 평생 인과 예를 공부하고 실천했던 유학자들입니다. 그 대쪽 같은 기개와 올곧은 생각, 온 세상을 품고 만백성이 홍복을 누리는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꿈꾸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맹렬했던 선비정신을 이제 우리가 다시 공부해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