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둔 딸에게...
수능을 앞둔 딸에게...
  • 김포데일리
  • 승인 200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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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딸에게...

높은 하늘은 흰구름 한점없이 드높은데 몇장 남지 않은 달력을 보노라니 "아 또 한해가 아무 한일 없이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만 바빠져 허둥대는 모양이 초조하다.
두달 남짓 수능을 앞둔 큰 딸아이 나보다 더 초조하게 시간가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아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데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도와줄 수도 없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떤 결단이 나든 나야 하는 시기이고 보면 이 가을이 주는 풍성한 열매가 그저 반갑고 감사할 수 없음에 내 옹졸함이 더욱 돋보이는 시간이 될 듯하다.
알알이 영글어 가는 벼를 보며 슬퍼지는 이유를 뭐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볍씨에서 싹이 터 연약하기 그지없는 새싹을 심을 때에 농부의 마음이 이럴까? 아프지 말라 약치고 잘 자라라 비료 줄 때의 마음이 이럴까?
농부의 마음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같은 선상에 있을까? 학교에서 배우고 읽히는 것으로 부족해 학원에서 혹은 과외로 지치지 않을 만큼 아니 쓰러지지 않을 만큼 붙잡고 있는 지식이 과연 살아가면서 얼만큼 사용되고 바른 삶으로 인도할까?
저녁 늦은 시간까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걸 보니 이 가을이 눈 언저리를 시큰거리게 한다. 탐스런 과일처럼 먹음직스럽고 보기만해도 행복한 그런 것이 아니기에.....
노동의 가치가 아니 노동의 수고가 댓가를 따질 수 없음에 시작한  교육이 아니던가! 사생결단을 내야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건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현명한 부모라고 말은 하면서 과연 우리의 현재 교육 방법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인지 .....
매일 오는 신문을 스크랩하고 왠지 시사 문제에 또는 논술에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면 형광펜 표시하며 읽기를 종용하는 내 욕심이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면 결코 바람직한 교육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이 가을, 들판에 서서 한번 멀리 바라보자. 노력과 수고의 땀이 없는 것들도 풍성하게 자라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어느 것은 열매로 어느 것은 향기로 어느 것은 꽃으로 그 자체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우리의 모양도 자연 미물이 그렇듯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그 자체 나만이 가진 향기로 주어진 삶을 살면 될 것 같은데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해 혹 인간미를 없애고 있지는 않은지, 대학이란 공장에서 고만고만한 인조인간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교육 과정을 마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쌓았던 지식을 얼마나 발휘하며 이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게 될지.....  배움은 나를 위함보다 나누는 것에 더 깊은 의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부질없는 것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아파트 화단에 심긴 대추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걸 보며 무상함을 느낀다면 내가 혹 허무주의에 빠져버린건 아닌지.... 청명한 하늘 처럼 나와 내 딸의 마음을 높고 푸르게 해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화단에 가꾸는 화초가 아니기에, 일년에 끝내는 농사가 아니기에, 연습이 없는 인생이기에  먼저 살아가는 인생 선배인 부모가 지표를 잘 들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느 길이, 어느 목표가 바르고 정직하며 어느 방식이 훌륭한 인생 공식인지 짜맞추어 가기가 힘들고 보면, 어렵고 힘든 세상에 존재하게 한 것이 미안해진다.
앞서 살아가는 나 또한 흔들리고 뒷걸음질 쳐야 할 때가 많음을 늘 새로움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고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오르도록 권해야 할지 그 정상이 늘 행복할지....... 미지의 세계가 너무도 불투명한 것 같아 이 가을이 더욱 스산하다.
하지만 스산한 이 가을에, 긴 인생 여정 중 한 고비라 생각하고 넘을 수 없는 고개는 없다는 것을 우리 딸에게 얘기해 줘야 겠다. 시계를 거꾸로 놓아도 세월은 간다고 했던가! 가버리는 시간 속에 좋은 추억,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을 심어 놓으라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 지금은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짐은 가벼웠다고 얘기할 때가 올 것이라고 ......
또한 추수할 때에 거두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더운 여름 말없이 보낸 농부의 땀방울을 생각하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마음에 여유를 두도록 우리 딸과 자연이 접할 기회를 가져야겠다. 자연과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지.
조용히 숨소리 죽여가며 공부하던 우리 때의 시절과 다름을 공감하는 어른이 되어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첨단 세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가 한걸음 물러서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첨단 기기들이 넘치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두가지 일을 같이 처리하는 아이들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입시의 무거운 닻을 가볍게 내릴 수 있도록 가슴 한켠에 희망을 가지고 조용히 지켜봐야 겠다.
강남의 부자 부모들과  비교하지 않음에 고마워 하면서 말이다.( 부모의 부의 척도로 자식의 앞길도 정해진다는 세태이므로) 많은 것을 해 줄 수 없음에 미안하고,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기대에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믿어주는 마음 흡족해하는 모습으로 남은 시간 지켜봐 주자.            
그리하여 가을의 풍성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만 있다면, 청명한 가을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말이다./노윤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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