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계절의 길목
<기고>계절의 길목
  • 김포데일리
  • 승인 200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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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소리에 핸드폰을 보니 "힘들고 지칠땐 하늘을 한번 쳐다봐요. 높고 푸른 하늘이 마음을 맑게 해 줄거예요"라는 문자가 쓰여져 미소짓게 해 주었다. 높고 푸른 하늘이 마음을 맑게 한다는 말에 눈부신 하늘을  바라볼 밖에..... 맑은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드높은 데 하늘 아래 풍경은 무더웠던 여름과 다름 없이 부산스러웠다.

 

가는 세월에 뭐라 답이 있을까? 한동안 하늘을 보며 그래 지칠땐 하늘을 한번 보는 것도 의미가 크겠구나 생각하며 유독 그날은 하늘을 많이 올려다 보았다. 마음이 넓어짐을 느끼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하루 해가 그리 감사하지 않았기에 하늘을 바라볼 여력이 없었을까? 매해 가을 하늘은 나에게 주어졌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있을 동안도 계절이 바뀌며 다가올텐데 오늘에  오는 가을의 풍경이 그저 살갑게 느껴짐은 아마도 무소유의 마음이 다른 때보다 강했음인가.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은 최선을 다해 아름다움을 자아낼 것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샌취해질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길 바람이 큰 소망이 아님을 아마도 자연은 잘 알고 있으리라. 하나씩  일을 마무리해가는 이 가을이 어쩌면 그래서 좋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새싹이 돋아나던 봄 병실에 누워있다 보니 여름은 누워있던 시간에 흘러가 버리고 짧기만 한 세월은 어느덫 가을을 내게 안기니 더욱 빠르게 느껴지는 것인가! 가볍게 여겼던 사고는 석달이란 시간을 병원에 있게 했고, 절대로 일상사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6인실에서의 동고동락은 20년의 나이 차이를 훌쩍 뛰어 넘었고, 서로의 아픔에 대해 얘기하며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환자가 방장으로 병실의 규칙을 정했고  그 규칙은 법만큼이나 강했다. 간병인의 활동까지도 간섭할 수 있었으니  꽤 높은 벼슬이라 해야 할까!

 

4500원 하는 식사는 병원식으로 간을 제대로 맞출 수 없었음인지 멀쩡한 입맛에는 도저히 끼니를 때우기 힘들었고  고추장과 상추쌈이 왜 그리도 그리웠던지...... 하루 세끼 고추장 없이는 밥 먹는게 괴로움이었고 보면 문병시 고추장 선물이 오렌지 쥬스보다 훨씬더 낫다는 것을 일반인이 어찌 알까?

 

유일한 운동 중 하나로  물리치료를 받는 일은 단조로운 하루를 벗어나게 하는 병원의 선물이었고, 매일 마주치는 환자들과의 덕담은 언제쯤 퇴원하세요가 궁금하고 또 가장 건네기 쉬운 말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의 불편사항을 말하는 것은, 불만을 토로하는 희귀종으로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환자 중 4%에 불과하다고) 까다로운 환자로 특별 관리대상이 되어 관리되고 있음을 보고 쓴웃음이 지어졌는데 특별관리를 요구했던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왜 투쟁을 하고 투쟁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내가 나 됨을 위해서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디서든 내가 살아있노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살아 있으니 살펴주시라 아우성대야 하는 상황이 참 슬픈 이면을 주기도 했다. 하긴 우는 아이 젖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단조로운 생활은 작은 일에도 큰 일처럼 다가와 힘들게 했고 늘 어딘가 불편한 육체는 타인에게 이해를 당연하다는듯 요구해서 상대방을 힘들게 했다.

 

낮에는 초록으로 가득한 논을 보며 벼가 자라는걸 보았고 밤에는 강건너 보이는 야경에 심취해 있을때가 행복했었는데 단조로운 생활에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들이 있어 아마도 무사한 귀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긴 병원 생활은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음을 배려해 바리바리 사들고 들어오는 병실의 손님들, 늘 환자만 대해야 하는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의 수고가 다른 삶보다 훨씬 더 어려울 거라는 생각, 환자를 경험해 보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 가을 아침에 더웠던 여름을 생각하며 풍성함에 감사하기보다  겨울을 준비하는, 여름내  고생했던 수고의 가치를 깨달음에 한아름의 꽃다발이 되어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면 더없는 삶의 윤활류를 주지 않을까? 나를 담당하셨던 한과장님과 수간호사님의 친절에 감사하며 병원의 일상업무에 좌충우돌 하시는 실장님, 병원의 평안함에 좀더 따뜻함을 주셨으면......

 

여물어가는 벼를 보며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려면 수고의 땀이 필요하듯이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도둑질만 배우지 말고 뭐든 알아둬야 한다는 우리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는 때이다./노윤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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